<<무정>>, 교과서에서 배운 그 <<무정>>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1939년 4월 이광수의 소설 <<무정>>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되었다. 영화 <<무정>>에 대한 관심은 지금과 당시의 그것에 다소의 차이가 있다. 우리 근대 소설의 첫 장면이 영화로 옮겨졌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과 글을 읽거나 못 읽거나 한 집에 한 권씩, 대를 물려가며 읽혀왔던 소설이 스크린에 펼쳐진다는 사실에 대한 호기심이 그 차이가 되겠다. 그리고 그 차이는 문학과 영화를 위계서열화하려는 문인엘리트와 대중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고급과 저급을 논하는 낡은 구도가 현(現)현(顯)하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다. 알게모르게 숨어있는 우리의 이와 같은 시각의 원형이자 우리를 뜨악케 해주는 자료가 있으니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소심한 광수씨의 반항질, 영화 <<무정>>의 밤

4월 15일 영화 <<무정>>의 개봉은 개봉전부터 주목되었던 관심이 폭발하는 순간이었으니, 개봉 이후 연일 '札止-후타도메,매진' 사례를 이어나갔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인 듯 삼천리사는 개봉 3일째인 18일 '영화 <<무정>>의 밤'을 개최했다. 개봉 즈음이면 영화 배우들이 단체로 이 방송 저 방송 예능프로그램으로 떼몰이다니는 지금이야 닳아빠진 일이겠으나, 당시로서는 단일 영화를 위해 잡지사가 특별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보기드문 일이었다.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감독 박기채를 비롯해, 안석영, 이규환, 김정혁 등 '조영-조선영화주식회사'측 동료감독과 주연배우 한은진과 문예봉이 감독과 배우측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삼천리사 대표 김동환,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김동인, 이헌구, 이무영, 백철, 최정희 등 문인들이 영화비평가 자격으로 참석하면서 뜨악한 장면들이 마구 연출되기 시작한다. 원작자인 이광수도 초대되었으나 신병을 핑계로 참석하지 않은 것도 해프닝이라면 해프닝이다. 대신 보낸 그의 편지에 담겨있는 영화 <<무정>>에 대한 불만 가득한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이 결석은 소심한 광수씨의 반항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밤의 행사는 채록되어 <<삼천리>> 11권 7호(1939년 6월 1일 발행)에 전문이 실리게 된다.


잊을 수 없는 기억, 영화 <<무정>>의 '밤'

오늘 저녁 바로 시내 황금좌에서 영화 「無情」이 상영되어 滿都 士女의 인기를 끄을고 있슴니다. 이 때에 우리들은 『無情의 밤』을 여러서 영원히 예술상 존귀한 이 작품에 대하야 이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을 삼고저 함니다.
김동환의 '예술상 존귀한', '이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억'과 같은 축사로 시작된 이 밤은 다른 이유에서 영화 <<무정>>의 '밤'으로 정말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답지 못한 기억이 되고 말았다. 이 좌담회는 크게 '주연배우의 고심담', '문사, 영화비평가의 평', '연출자의 의도'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행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비평가의 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재미있는 구성이라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어느 새 문인들이 영화비평가로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김동인-춘원의 無情이 아니고 박기채씨의 無情이더군요.(一同 笑)
이헌구-어제 저녁 시사회 석상에서도 춘원께서 다 보시고는 이것은 박기채씨가 창작한 無情이라고 하시더군요.
김동인-나도 바로 았가 오후에 달려가 보았는데 내에게 직감된 몃 가지 결점을 든다면 첬재 이 영화화된 無情은 스토리의 일관성을 일었어요. 만약 원작을 읽지 않코는 이 영화에 비처지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약이의 줄거리를 찻지 못하겠어요.
김동인, 이헌구의 맞장구로 시작한 영화 <<무정>>에 대한 비평은 영화 <<무정>>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되었다. '춘원의 무정이 아니고 박기채씨의 무정'이라는 김동인의 말 끝에 붙어 있는 '一同 笑'는 문인들의 조롱과 연출자의 당혹스러움에서 비롯된 웃음이다. 감독의 원작에 대한 오해, 배우들의 서툰 감정 연기 등, 결국 영화 <<무정>>에 대한 평은 원작 훼손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수집 절차로 진행되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첫 장면, 단오날 그네뛰고 돈치기 하는 축제 시퀀스가 도대체 원작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첫 장면부터 원작을 훼손하겠다는 각오가 천명된 것이 아니냐는 질타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원작 이상으로 살닌 좋은 점도 말슴하여 주서요... 엄써
기자-그렇게 결점만 말슴 마시고 이번에는 원작 이상으로 살닌 좋은 점도 말슴하여 주서요. 좋은 점이야 수두룩하지요. 첬재 맨 처음 맨 첬 장면이 소녀가 근네 띄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은 一幅의 名畵얘요. 조선의 로켈 칼라를 100파-센트 나타냈어요. 그 힌 치마폭이 수양버드나무 우로 번득이는 광경 참으로 인상적이야요.
白鐵-그 장면이 全篇에서 가장 깨긋하고 조왔는데 그러나 또한 필요 이상으로 멋없게도 길어젓서요.
金東仁-그리고 原作에는 亨植과 英采의 少年時代를 겨우 두 서너 줄로 설명하여 버렷는데 영화는 거지반 이 소년시대를 평면적으로 묘사하기에 尺數의 3분 2를 허비했어요. 역시 소년시대는 간결하게 생략함이 좋지 않었을가요.
영화에 대한 비판이 격해지자 김동환은 결점만 지적할 것이 아니라, 원작을 뛰어 넘는 장면들에 대한 평도 함께 해달라며 진땀을 뺀다. 가령, 첫 장면이 조선의 로컬을 잘 살리지 않았냐고 운을 띄워 보지만 모두 냉담, 오히려 잘 걸려들었다는 듯, 원작과는 상관도 없는 이 장면, 그리고 형식과 영채의 어린 시절에 너무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핀잔만 늘어놓는다. 계속되는 영화비평가로 호명된 문인들의 질타에 감독과 그의 동료들은 '마땅한 지적이다, 그러나 로케이션 제한이나 필름값 인상 등 영화 제작 환경이 좋지 못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았다'와 같은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이렇게 '영화 <<무정>>의 밤'은 검사와 피고 둘만 존재하는 법정 분위기를 연출하며 끝이 나는 듯 하다. 그나마 안석영이 문인들이 알아들었을지, 못 알아들었을지 모를 듯한 한 마디 변론을 던진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겠다.
소녀 영채가 고향을 도망해 나올 때 동구밧 돌부처의 그 유모어한 장면이라든지 신우선 박영채가 想愛하려는 그 때 저 멀니 背後로 결혼식 행렬이 지나가는 데라든지 그밧게도 조케 본 곳이 만해요.
이 부분은 영화 <<무정>>에 사용된 몽타주 기법에 대한 찬사이다. 이 한 마디의 찬사가 저 무지막지한 문인/영화비평가들의 질타로부터 영화 <<무정>>을 자유롭게 해줄, 그리고 '영화 <<무정>>의 밤'을 아름다운 밤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었을 법한 발판이 되지는 않을까 싶다. 소설의 미학이 있듯, 영화의 미학 또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즉 원작이 있는 영화라고 해서 단지 원작에 대한 충실도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닫게 해줄 기회가 아쉽기만 하다.


판사는 그럼 어디에?

마음껏 칼날을 휘두르는 문인/영화비평가들이나, 본격/고급문학으로 분류된 소설이 영화로 제작/개봉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한 우리들이나 문학과 영화, 고급과 저급예술로 이분하는 감각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모자이기도 하다. 이 '영화 <<무정>>의 밤' 행사에 검사와 피고만 있다면, 판사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것인가?
김정혁-내가 지금 마구 극장에서 오는 길인데 아츰도 만원 두 번재의 오후도 만원 세 번째의 이번도 「札止」를 하고 수백의 관객이 도로 도라갔어요. 대성황이어요. 20여년 동안 「無情」의 聲譽가 컷느니 만치 누구나 한번 볼려하는 듯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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